체험후기

라섹수술 이후 초점문제 및 사회생활의 어려움

작성자: 조OO  /  등록일: 2017-12-20  /  조회수: 797

 

 

 

 


 

 

  ◈ 눈의 기능문제 : 라섹수술 이후 초점문제 및 사회생활의 어려움

 

 

20171130

OO (32세)

 

 

중고등학생 때부터 남들보다 햇빛을 유난히 눈부셔 했고, 안과에서 안경을 맞출 땐 항상 근시, 난시, 원시가 다 있다는 진단으로 늘 주문렌즈 안경을 처방받고 했습니다. 10대 후반 지나면서 안경이 싫고 너무 불편해 안경을 쓰지 않았으나, 20대가에서 되고 업무를 하면서 PC를 보거나, 집중력이 필요한 일들에 어려움을 느껴 25살에 라섹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술 후 저의 회복력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회복이 아니라 악화가 되었습니다. 6개월에서 1년 즈음 되면 눈이 좋아지면서 원래 상태로 돌아가면서 차차 잘 보일 거라는 말에 기다렸지만, 눈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2, 3년이 지나도 제 상태는 오락가락하며 더 안 좋아졌고, 수술한 병원 검진일마다 가서 빛번짐, 눈부심, 안구건조, 그리고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력임을 호소했으나, 수술은 이상이 없다. 당신이 예민한 것이다.” 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말은 아예 들으려하지도 않는 일방적이고 방어적이었던 의사선생님의 차가운 태도는 저에게 큰 상처가 되었고, 겁이 났지만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다음 진료 때 그 의사가 아닌 다른 선생님을 연결해달라고 하여 울면서 저의 증상을 다시 호소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때 해결책은 안약과 인공눈물 뿐이었습니다.

 

수술을 했으니 당연히 더 잘 보여야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 힘을 주게 되면서, 저는 몸의 모든 에너지를 잘 보려는데 쓰기 시작했고 근무 중에도 기진맥진하여 풀썩 엎드리는 일이 잦았으며, 퇴근 후 귀가하자마자 씻지도 않은 채 그대로 몇 시간을 쓰러져 있기 일쑤였습니다.

 

의지대로 한 게 아니었습니다.

기력을 모두 소진하고 그 이상으로 버텼었기에 눈을 뜨고 있을 힘도 없었던 것입니다.

 

눈으로 사람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면서부터 친구들, 혹은 지인과의 만남도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운동도 당연히 못했습니다.

 

좋아하던 책도 볼 수 없었고, 추가적인 학업, 공부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고자 안경을 다시 쓰기로 맘먹고, 여러 개의 안경을 맞췄습니다. 일반 안경으로는 또 근거리가 보이지 않아서, 돋보기를 따로 맞추고, 수시로 변하는 시력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누진 다초점렌즈안경도 맞췄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방금 전과는 또 달라진 초점으로 세상이 보이는 순간, 안경 도수로 인해 오히려 시야가 흐려지고 더 안보여서 도저히 쓰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도수로 저 도수로 맞춘 안경만 해도 8개는 됩니다. 하지만 모두 소용없었습니다.

 

근무할 때 제가 바른 방향으로 보고 있던 글씨를, 저의 반대편에 서서 글씨를 거꾸로 쳐다보던 사람이 저보다 먼저 글씨를 읽고 저에게 지적했을 때는 창피함을 넘은 수치심까지 느꼈습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머리가 왜 빨리 안돌아가는 건지.. 바보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근무 뿐 아니라 친구를 만날 때에도 대화에 집중이 되지 않더군요. 어떻게든 상대방의 눈동자를 제대로 쳐다보면서 느낌을 읽고 공감하고 싶었지만, 그게 잘 안 된다는 걸 느끼면서 초조하고, 안절부절하고, 종종 엉뚱한 얘길 했던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제 머릿속엔 친구와 만나서 느낀 좋은 느낌도, 그리고 서로 나눴던 대화에 관한 느낌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며 그저 어서 집에 가서 쓰러져 쉬고만 싶을 정도로 방전돼 있었습니다.

 

기억을 하려고 메모를 하면 메모를 한 사실도 메모지를 놓은 위치도 기억이 안 났고, 책을 겨우 몇 줄 억지로 보다가 너무 지쳐서 쓰러졌다 일어나면 책 내용과 내가 책을 읽었는지에 대한 여부조차 깨끗하게 머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주변 사물에 대한 인식도도 떨어졌습니다

집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주방 장 모서리에 머리를 찧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고개만 살짝 들어도, 아니 들지 않아도 우리 집 매일 보는 주방인데, 이게 어디쯤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하던 업무를 놓지 못하고, 좀 더 정확히는 저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혹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지만 병원에서 해결 해줄 수도 없고, 안경을 써도 안 되니까 혹시나 이것이 수술의 부작용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상상을 간혹 하면서도 막상 병원에는 가지도 못하면서 내가 회복이 느려서 그럴 수 있다 라는 자위로 어떻게든 내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인정 할 수 없어서 어떻게든 답이 보이지 않는 사망선고 같았던 그 마음이 드는 것이 끔찍이도 싫어 이겨내려고 발버둥 쳤던 것 같습니다.

 

4년을 끙끙거리며 일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도대체 어떻게 무슨 정신으로 버텼나 싶습니다.

아마 차분하게 사고 할 수 없는 상태였던가 봅니다..

그러다가 눈이 아닌 다른 곳까지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서 일을 멈췄습니다.

 

제 삶의 질은 바닥을 쳤습니다.

눈은 떴지만 아무것도할 수 없는 장님 같았습니다.

사람을 만나 눈을 보고 감정을 나누는 일이 두려워 피했습니다.

눈을 뜨는 동시에 내가 여태껏 갖고 있던 삶에 대한 기억들이 탈탈 털리는 거 같았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것들이 내 머릿속으로도 느껴지면서 세상을 인지해야 했는데, 그게 되질 않았습니다.

앞으로에 대한 계획,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참담하다가도 머리가 멍해지면 그 비참한 기분조차 날아가 버리기도 했습니다.

 

가까운 주변에서는 이런 저를 이해하지 못했고, 의지가 약하다, 왜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하느냐, 왜 메모하지 않느냐, 열심히 하려고 마음을 강하게 다 잡지 않는다며 질타할 뿐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너무너무 힘든데, 낙오자 취급까지 당하니 정말 서러워서 참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몸도 마음도 자존심도 자존감도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에서 저는 이 시지각센터를 만났습니다.

안과로 명성이 높은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여러 안과를 전전하며 현재의 안과의학에서 도움은커녕, ‘예민한 환자취급을 받았던 저는, 병원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시각기능 검사결과 저는 양 눈을 함께 사용하기보다는 한 눈으로 보고 있다는 상태임을 알았습니다. 

왼눈과 오른 눈이 협동하여 균형 있게 봐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TV를 보던 저에게 왜 한쪽 눈으로 TV를 째려보니, 똑바로 하고봐야지 라며 다그치시던 이야기가요..

 

센터 원장님은 '라섹수술로 갖고 있던 눈의 상태가 더 악화 되었을 수는 있다고 그러나 저의 양안협동장애는 아마도 굉장히 오래 지속되어 왔을 증상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라섹수술 하기 전, 거의 3시간 가까이 되는 긴 시간동안 열 몇 가지나 된다는 여러 가지 눈 검사를 받았지만, ‘라섹을 해도 되는 눈이며, 난시가 교정되어 훨씬 잘 보일 것이다라는 이야기 외엔 그 어떤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지각센터에서는 제가 숱한 병원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 눈은 열심히 훈련하면 좋아 질 수 있는 눈이라고 하셨습니다.

좋아질 수 있다고?

듣기 들었지만, 와 닿지도, 실감나지도 않고 그다지 밀어지지도 않는 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암흑 속에 있었으니까요..

 

사람이 병이 들었는데 고칠 데가 없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하다는 데는 다 찾아가고, 굿을 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다니다가 이 방법을 믿으면 좋아진다., ‘낫는다라는 말에 혹에서 정말 잘못된 치료를 받게 되거나 사리분별이 잘 안되니까 너무 절실해서 직. 간접적으로 많이 접합니다.

 

저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습니다.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그 마음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저도 용한 데가 있었다면 아마 찾아다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지각훈련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시지각, 시기능훈련이 궁금하더군요..

 

원장님 쉽게 말해서 안구물리치료같은 개념이라도 보면 된다고 하시는 말에 아! 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물리치료의 원리는 환부에 적절한 자극들을 줌으로서 그 부분의 세포들을 활성화시켜, 점차 자가적으로(주사나 약물투여 없이) 아물고 회복하게 만드는 치료라고 저는 대략 알고 있습니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요..

이 시지각훈련도 저처럼 양안이 균형 있게 협동하지 못하고 예를 들어 한눈은 20~30%사용하고 다른 한눈을 70% 사용해서 사물을 보는 등의 어려움이 있는 경우, 눈에 비정상적인 힘을 주게 되고, 정확하고 편안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초점이 더 안 맞으며 에너지가 빨리 떨어져 금세 지치고 집중력, 기억력, 일의 효율 등이 떨어지는 증상들이 생길 때...

 

양 눈에 동일한 자극을 주도 균형 있게 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보는 습관을 다시 제대로 잡아가는 훈련, 즉 뇌로 들어가는 자극이(눈을 통해) 균형이 맞도록 바르게 하나의 사물을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뇌로 균일한 자극이 반복되어 균형을 잃은 눈이 균형을 찾는다라.. 언뜻 생각하니 굉장히 오래 걸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했습니다.

2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모든 게 새롭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이제는 생각하고 꿈을 꿉니다.

 

책 한 줄도 기억 못하던 제가 눈이 안 좋아지던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에 대해 더듬어 생각하고 기억도 해가면서 이 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감히 상상 못했던 일입니다.

이제는 친구도 조금씩 만나고, 영화도 보고, 가끔은 책도 봅니다 ^^

아직 계속 훈련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좋은 눈이 될 것 같아 조금 기대도 됩니다.

 

예전에 뭐라고 표현도 힘들 정도로 비참했을 때, 가까운 그 누구도 제 편이 아니었을 때 시지각훈련을 시작하게 된 이 센터가 저에게 유일한 삶의 희망이고 연결고리가 되주고 빛이 되주었습니다.

이미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시지각센터가 대중화 되있더군요..

그래서 아직 한국에는 단 한곳뿐인 공식센터인 이 곳이 더 귀하게만 느껴집니다.

 

현대의학과 달라 아직 낯설어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낯설다고 무조건 피하는 건 어리석은 일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는 검안학이라고 해서 전문 검안사를 양성하여 자격과 면허를 주어 법으로서 인정하고 보호받는 분야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게 뭔지 몰라서 불편하고 힘든 삶을 사는 분들이 곳곳에 많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있었으나 모르고 살다가 서른이 다 돼서야 알게 된 저처럼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훈련을 통해서 눈을 편하게 쓰고 삶의 질을 높이시길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