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후기

"10년이 된 유학생의 학습문제와 힘겨운 증상들이... 센터의 6개월이 인생의 터닝포인터가 되었습니다"

작성자: 정OO  /  등록일: 2019-04-02  /  조회수: 502

 

 

 


 

 

시각기능 문제의 유형: 양안시 이상/학습문제

2019. 3. 29.

정OO (48세)

 

저는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시작 한지 10년이 된 유학생입니다.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스스로 의문을 가진 것은 대략 1~2년 전부터였습니다.

만화에서나 묘사될만한 꾀병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책을 ‘펴자마자’, 혹은 책을 읽기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심하게 졸곤 했습니다.

 

아무리 잠을 많이 자도, 컨디션을 잘 조절해도 그랬습니다. 

말 그대로 책을 펴자마자 고개가 뚝 떨어지는 체험은 자신에게도 너무나 황당한 것이었습니다. 기면증인가 의심이 갈 정도로 기절하듯 떨어지는 머리를 어찌해야 할지 답답한 일이었죠.

어쨌든 마음을 다잡고 짧은 시간이라도 볼 결심으로 일단 책을 펴면 책을 가운데 놓고 볼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늘 한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책을 대각선으로 펴 놓아야 편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대각선으로 배치된 책 위의 글자가 살며시 두 개로 갈라집니다.

 

좀 더 읽기 시작하면 글자들이 뿌옇게 흐려지기 때문에

저는 그 뿌연 안개를 해치면서 글자 하나하나를 ‘발굴하면서’ 겨우겨우 근근이 책을 읽게 됩니다.

당연히 집중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읽었던 페이지를 다시 읽고,

기억도 되지 않고 모든 것이 힘들어지게 되는

 

총체적 난국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본인 스스로에게는 일상생활 자체가 두려움으로 변해가는 것이었죠.

 

게다가 이미 말한 대로 책을 열자마자 졸음이 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만화 같은 꾀병’이라 누구에게 쉽게 탁 터놓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이기에 내적 고립감도 상당했습니다.

 

 

처음에는 스스로의 게으름과 의지박약을 그 원인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의지를 다해 졸음을 억지로 참고 책을 보면 곧이어 두통이 시작되고, 그 두통마저 참으며 책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몸 전체가 심하게 아파 며칠의 휴식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본 날이면 적어도 3일 이상의 휴식을 해야 했습니다.

 

 

안구 전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느낌 속에서

눈이 맵고 눈물이 마구 흐르면서 머리와 몸이 아프고,

잘 보이지 않을 때의 내 모습은 뭐랄까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아이의 모습으로 어딘가에 버려진 느낌까지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것은 단순한 의지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체력이 너무 약해서, 그렇다고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하루에 적어도 30분 이상씩 꾸준한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운동을 하고 나서도 힘이 들어 즉각적으로 수면을 취하지 않고는 몸이 배겨나질 못했습니다.

책을 조금 보면 보는 대로 잠을 자야 괜찮아지고,

운동을 하면 운동을 하는 대로 또 수면을 취해야 하니 이리 해도 저리해도 진퇴양난이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공부를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나오지 않았고, 이러한 상황은 점차로 불안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리듬으로는 유학 생활을 마무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죠.

늦깎이 유학생이라 이대로 포기한다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국면을 송두리째 상실하는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해 한국에 잠시 들어왔을 때 동료가 ‘한국시지각센터’라는 곳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사실 저의 곤란스런 상황을 누구에게 말하기 어려워 일부 동료들에게만 말했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있던 동료 하나가 혹시 모르니 여기라도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혹시 모르니’라면서 제게 권했던 이유는 자기가 가본 곳도 아니고 그저 들어서 아는 곳인데다가, 공식적으로는 병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권하지 못하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저것 가릴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체감하는 고통이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종합병원의 안과에 갔을 때는 아주 단순한 답변밖에 들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노안이 이른 나이에 왔고, 안구건조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돋보기와 인공눈물을 처방받은 것이 다였습니다.

돋보기를 쓰니 처음에는 글자가 잘 보이는 것 같았으나 곧이어 똑같은 반응, 곧 글자가 갈라지고 뿌옇게 되면서 졸음과 두통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인공눈물을 넣으면 오히려 눈이 매워지고 더 뿌옇게 보였습니다. 난감했죠.

 

 

어쨌거나 저는 한국시지각센터를 황급히 찾았습니다.

​검사를 받고 많이 놀랐습니다.

 

제가 겪은 어려움들은 단순한 시력 문제 혹은 노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 진행된 여러 기능상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채로 증상이 심화되어왔기 때문에 사실은 공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상태의 눈이었습니다.

최종 진단은 ‘학습장애’인데 유학생에게 이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내려주신 진단들을 살펴보면서 저는 유학 생활뿐 아니라 제 인생 전반에 걸쳐 얽힌 실타래들이 풀려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눈의 문제가 유학을 하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한참 어릴 때부터 어쩌면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고,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고질적 어려움들이 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 기절했던 것,

학교에서 혹은 군대에서의 생활이 남과 달리 이상스럽게 힘들었던 것,

일상생활의 리듬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남에 비해 현저하게 적응력이 떨어지던 모습,

이와 더불어 듣고 읽음에 있어서, 곧 인식하는 전반에 대해 이해력이 떨어지는 모습,

그리고 전철 속이나 사람이 많은 식당에서 불안하고 어쩔 줄 몰랐던 것들,

두통약도 소용없는 극심한 두통과 피로, 우울함과 공허함 등은

 

모두 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시각 자체가 흔들리면서 몸의 여러 지체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임을 하나하나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열자마자 힘들었던 것도 게으름과 학습에 대한 거부보다는 눈이 펼쳐있는 활자들을 인식할 바탕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몸을 비틀어 대각선으로 책을 볼 수밖에 없던 것도 위아래로 틀어진 불균형한 시선 문제 때문이었고,

운동을 하고 나면 남보다도 힘들었던 것 역시 눈이 위아래로 균형을 잡지 못해 시각 자체가 흔들려 몸 전체에 피로가 전달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진단은 눈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우선 자신에게 스스로 게으르다고 책하면서 가혹한 책임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남에 비해 뒤떨어진다기보다는 그저 오랫동안 아팠을 뿐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자존감을 되찾을 실마리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개월 동안 공부를 쉬고 재활 치료를 받기로 과감하게 결심하고 귀국해서 치료에 본격적으로 임했습니다.

초반에는 힘들었습니다.

약을 먹고 바로 치료가 되는 병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순한 재활을 꾸준히 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기능장애이기 때문에 조금만 재활을 하면 매스껍고 구토할 것 같은 느낌이 나고 심하게 졸음이 와서 그 자리에서 드러누워 자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꾸준한 재활치료 - 센터에서의 재활뿐 아니라 집에서 개인적으로 행하는 자가 재활 훈련까지 포함하여 - 가 세 달을 넘어갈 때 일주일가량을 심하게 아팠었는데,

그것을 회복한 다음 눈이 속도감 있게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섯 달의 치료를 마치면서

책만 읽도록 설계된 - 설계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돋보기가 아니라 눈의 위아래 흔들림을 잡고 안구의 좌우 조절 운동을 돕도록 처방했다는 뜻입니다 - ‘근거리 안경’과 일상생활을 위한 ‘다초점 안경’을 처방받았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세상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근거리 안경을 처방받은 날을 기억합니다.

책이 너무 잘 보였습니다.

 

내가 책을 본 다기보다 글자들이 나의 눈으로 돌진해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제 삶 안에서 이렇게 글자를 명징하게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밝은 시각 체험이었던 것입니다!

 

저도 모르게 신나서 웃으면서 이 책을 보다가 저 책을 보다가 그날 밤을 보냈습니다.

 

보는 책마다 잘 보여서 놀랐고 한 책을 한 시간가량 연속 독서를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어서 받은 다초점 안경은 일상생활을 물 흐르듯이 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근거리 사물을 주시하다가 고개를 들면 주변이 뿌옇게 변하는 것이 제 눈의 상황이었는데, 전문 처방을 받은 다초점 안경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스마트폰을 보다가 기다리던 버스를 향해 눈길이 갈 때 어려움 없이 시각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길거리의 간판들이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잘 보기 위해 눈을 찡그리던 버릇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주변 사람들이 인상이 편해졌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쓴 다음날 저는 다시 이탈리아로 출국해서 학업을 이어갑니다.

향후 1~2년 안에 공부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다짐하면서 새마음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사실 여섯 달을 치료에만 전념했는데,

이 시간들을 그저 흘려버렸다고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이 여섯 달이 인생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됨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치료를 길게 받다 보니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금세 알아채곤 합니다.

 

그래서 센터에 여러 분을 소개해드렸는데 그분들 모두 저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분은 저보다도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들 모두 누군가가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의 문제가 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그저 아프고, 혼란스럽고 우울하고 심하면 자해까지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밝히 자기 사정을 말하면 꾀병처럼 들리거나 의지박약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지 몰라 속앓이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안과에서 종합검진까지 받았음에도 그저 안구건조증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제가 공부하던 이탈리아에서 함께 공부하던 동료 역시 저와 같은 증상을 가졌었는데, 그는 프랑스에서 잠시 체류할 때 안과를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과 의사가 이것은 자기 분야가 아니라면서 검안사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사실 안과에서는 질환을 다루지만 검안사는 시지각 기능을 다루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분야가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안과 의사만이 권위를 인정받아 눈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관장합니다.

그러나 본인의 체험도 그렇고 동료의 체험도 그렇고

안과에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습니다.

 

이들에게 안과 의사도 있지만 검안사도 있다는 정보가 밝히 알려졌다면 사실 많은 이들의 삶의 개선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삶의 질이 향상된 것은 물론이고 인생의 의미도 새롭게 바라보며 기쁨을 찾았다는 것이 큰 열매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잘 회복되었다곤 하지만, 아직도 사각지대에서 고통받을 많은 기능성 시각장애 환자들의 삶이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이 고통은 겪은 사람만이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검안사 제도가 도입되어서 보험의 혜택도 받고 그 정보도 밝히 알려져서 많은 이들이 같은 기쁨 누리기를 기원해봅니다.

그리고 한국시지각센터의 원장님과 대표님,

그리고 모든 치료사분들께 진심으로 큰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병원을 참 많이 다닌 사람인데 여기처럼 따스한 느낌을 받은 곳은 없었습니다.

그저 치료행위만 하지 않고 친절하게, 때로는 아이를 다루듯 세심하게 배려해주심에 믿고 오랫동안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부디 한국시지각센터가 더욱 발전해서 많은 이들의 어두움을 빛으로 바꾸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를 위해 보다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식적인 치료센터, 곧 제도적인 혜택이 함께하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